[언론보도] 시작의 불




 
 






 


진화 혹은 퇴행에 관하여

– ‘시작의 불’을 중심으로 –

불은 대개 고체가 아니라 그저 뜨거운 온도와 빨간 빛이라고 단순하게 인지되곤 한다. 그런데 정말 불은 그렇게 명확한 것인가. 명약관화. 즉 ‘불 보듯 뻔하다’라는 말도 있지만 인간에게 있어 불은 무언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안종현은 이 기체적 현상이 가진 미디어적 속성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이 가진 성격이 그와 비슷하다는 것을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인류의 태동과 함께 밤과 낮은 자연의 가장 큰 제약 중 하나였고, 지금도 그렇다. 여기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을 찾는다면, 인간이 불을 사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불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와 욕망은 스스로를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들어왔다. 그것도 여러 차례나, 인간은 스스로 불의 심판을 받고 사라질 뻔했다. 이것은 단지 바람이 부는 대로 가는 것이어서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활 과학 수준에서의 불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바람’이라는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불분명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그 문제의식을 시각적으로 다루는 작업은 맘대로 흩어지고 있는 불을 허깨비처럼 잡아내고자 하는 유아적인 카메라 놀이에서 찾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종현의 ‘시작의 불’은 그 시작이 바라보거나 혹은 이미 초래되고 있는 끝에 주목한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끝은 불이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서 어떻게 경계를 허물어왔는지에 대한 천착이다. 그 경계는 잿더미가 된 화재 현장이기도 하고, 불을 찾는 행위를 시뮬라끄르적으로 구현한 게임적 상황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설치된 홀로그램 팬이 보여주고 있는 불빛은 드디어 기계로서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카메라와 비슷한 시기에 발명된 성냥을 중요한 오브제로 환기하기도 한다.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를 통해 19세기 중반 성냥의 발명은 동작 한 번으로 가능하게 하는 기술혁신을 대표하며, 카메라의 ‘찰칵Knipsen’ 동작 역시 이와 유사하다고 밝혀둔 바 있다. 특히 여기서 우리는 “카메라가 사건이 벌어진 순간에 가한, 이른바 사후적 충격”이라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인식은 이러한 진술을 만나는 순간 카메라가 가진 속보성이라는 뉴스 저널리즘의 기능으로 가볍게 편입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안종현의 잿더미가 된 산불 현장은 뉴스보다는 르포르타주적인 방식에 가깝다. 가치중립적인 척 하면서 자꾸만 도덕성을 입으려고 하는 다큐멘터리 쪽과도 거리가 있다.

망원렌즈를 쓰지 않고 바로 앞에서 표준 화각으로 작업을 진행해온 안종현은 군, 붉은 방, 미래의 땅, 통로, 풍경 시리즈로 이어지며 본질적으로는 그 현장에 잿더미처럼 남아있는 무언가를 찍으려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첫 시리즈인 ‘군’(2007)의 당시 사진들을 만나자마자 느꼈던 것은 ‘차가운 뜨거움’이었다. 훈련 중인 군인은 결코 식은땀을 흘리지 않는다. 식고 있는 뜨거운 땀을 흘린다. 그것은 ‘냉전’이라는 오랜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화력이 응집되어 있는 군부대에서의 나날은 긴장감과 방만함을 오간다. 그러나 다시 사회로 나온 전역자 중심의 담론은 그것을 ‘추억’이라는 무력함으로 전승한다. 안종현의 사진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그가 기록한 과거는, 그러나 마치 전시 상황의 전투 전야처럼 긴장되어 있다. 폐기 직전의 탄약들이 가진 마지막 가능성은 그래서 더더욱 무서웠다. 그런가 하면 ‘붉은 방’(2011)은 100년간 주인이 계속 바뀌며 병참기지 노릇을 해온 서울의 노른자 땅 용산의 가장 음습한 치부의 붕 떠버린 시공을 마주하고 있다. 매일 밤 불장난 같은 욕망과 불쏘시개로 전락한 여인들의 기운마저 사라진 채 또 다른 개발을 기다리고 있던 잿더미 위에서 안종현은 그것을 할퀴고 간 흔적들에 우리를 서성이게 했다. 또한 화석 연료 중심의 근현대가 보여준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여준 ‘미래의 땅’(2013) 역시 이제는 식어버려 무관심 속에 고체화된 영월 상동을 조명함으로써 불 한 번 지피지 않고 과거로부터 미래였던 현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 시간의 무상함은 다시 전통의 중심인 종로를 향한다. ‘통로’(2014)는 과거의 영광이 우리의 일상에 할 말을 잃고 서 있는 낯선 풍경으로서 잡아낸 것이며, ‘풍경’(2017)은 말 그대로 풍경이라는, 그래서 가장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자연으로 풀어낸 일종의 도전이었다. 인류의 역사와 반대편에 표백된 채 서 있을 것 같으면서도 계속해서 생성과 소멸을 해온 자연의 이중성은 안종현에게 있어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한 무엇이었다. 그리고 이제 전작들이 가지고 있는 반어법들은 잿더미로 변해버린 산이 가진 생명력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여기서도 역시 안종현은 불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뜨겁게 결합하고 태워버린 이후에 주목함으로써 그 경계의 모호함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안종현이 말하고자 하는 불이란 진화인가, 아니면 퇴행인가.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은 두 기제를 모두 수행하고 있는 카메라를 통해 불은 여러 의미와 형태의 시각적인 것이 되었다.

따라서 그가 주목해온 소멸은 이미 ‘현재’라는 시점을 ‘보통’이라고 고체화했던 태도와도 닮아 있다고할 수 있다. 안종현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생명 있는 피사체는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굳이 윤리와 도덕의 법정으로 회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의 카메라가 우리를 그 고체화된 현장 앞에 세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사진을 보며 굳이 소멸이 문드러지고 있는 무언가로, 또는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는 슬픔으로 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물론 현대인들에게 있어 죽음을 극히 자연스러우며 거역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끔찍하고 부당한 재앙이라고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수전 손택이 「사진에 관하여」를 통해 제기한 바 있는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어쩐지 슬픔의 끝에 서 있는 시작의 새로움도 한 송이 꽃 따위의 작위 없이 느껴진다. 오히려 불에 탄 무덤 몇 기가 말없이 그 생명의 역설에 말을 보탠다.

안종현은 ‘미래의 땅’ 작업에서 보여준 테크니션으로서의 정점으로부터 힘을 빼고 자연의 일부로서의 불이 현재 어디에 와 있는가를 탐구함으로써 자신이 다루고 있는 카메라의 속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 분명할 듯 하면서도 결코 분명할 수 없는 시각의 본성을 보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멍청한 뜨거움 위를 달려왔는지, 그래서 그 끝에 부서져 있는 차갑고 숙연한 오늘은 어떤 진화 혹은 퇴행을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보자마자 느끼게 되는 우리의 직관은 무엇인가. 감성인가? 아니면 이 역시 분석할 수 있는 이성의 것인가. 불은 꺼져 재가 되었지만, 아직 꺼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새로운 논의를 시작해보자.

배민영(갤러리서울 대표, 취향관 편집장)
 



출처 : http://arthive.kr/archives/9237



 





[2way art]산불, 그 이후…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생명

 
■ 안종현 <시작의 불> 2019.03.05 ~ 04.03 갤러리 에무
 
“2017년 봄, 강원도 강릉에서 큰 산불이 났다. 대형화재로 발전하여 헬리콥터와 소방대원들이 출동됐음에도 불구하고 몇 주 동안이나 진압이 어려웠다”

 
시작의 불 – forest #01, pigment print, 100x145, 2019
 
여기까지는 언론보도이고 사실이다. 사건의 발단이자 종결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안종현의 카메라는 작동한다. 그의 호기심은 “왜 현대사회에서 몇 주 동안이나 산불을 제압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여, 사진이라는 예술장르의 역할을 대안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시작의 불 – factory #01, pigment print, 140x185, 2019
 
불은 예술에서 매력적인 모티브이다. 역사의 기원은 인류와 문명의 시작을 열어준 모닥불에서부터 시작하고,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에서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이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은 가련한 소녀의 염원을 담은 알레고리가 된다. 불이 가지고 있는 꺼지지 않는 에너지와 시작적인 특징은 여러 예술에서 다루어진 바 있다. 한편 안종현 작가가 불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최근 미디어에서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화재뉴스였다. 그는 2010년 이후 국내에서 대규모 화재가 매우 빈번히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집 근처 수락산에도 화재 뉴스를 접한 이후에 직접 현장을 찾았고, 잿더미 속에서 포착되는 묘한 생명의 에너지는 ‘시작의 불’의 모티브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에게 불이라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시작의 불 – factory #15, pigment print, 140x185, 2019
 
<시작의 불>의 코드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사진과 카메라라는 매체를 접하는 태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론에 등장하는 산불의 이미지는 현장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써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화재현장을 담은 사진을 통해 화재의 규모를 가늠하거나 정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사 이후의 현장과 사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시작의 불 – forest #01, pigment print, 100x145, 2019
 
그런 맥락에서 사건의 발생 이후의 현장에 주목하는 안종현 작가의 사진은 르포르타주(reportage: 프랑스어 ‘탐방’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장성을 바탕으로 보고자의 주관을 섞지 않고 서술하는 방식의 문학, 영화, 사진, 다큐멘터리)의 방법을 토대로 한다. 산불이 나고 잿더미에서 발견한 생명력은 어떤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에너지였다. 또한 사진 한 장이 현장의 주인공으로 오롯이 기능하며, 현장의 사실성과 동시에 에너지와 감성을 전달하는 매체로 되살아난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사진 앞에서 여러 방향의 유추와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르포르타주 사진의 매력이다.

 
HENRI CARTIER-BRESSON 1908-2004ㅣ사진출처 International photography Hall of Fame and Museum
 
르포르타주적인 이미지를 위한 기법적인 원칙은 단순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 기본에 충실하려는 관점이 묻어난다. 원칙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을 트리밍*하지 않을 것, 표준렌즈를 사용할 것, 그리고 롱테이크 기법을 활용할 것. 이 원칙은 작가가 가장 존경하는 사진작가이자 스트레이트 사진의 역사적인 인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원칙을 따른 것이다.
*트리밍ㅣ사진 촬영어 끝난 후 화면구성을 하는 것.
 
브레송은 1930년대와 40년대 세계 제2차대전과 스페인 내전의 정황을 포착한 스트레이트 사진으로 잘 알려진 사진작가이다. 그의 사진은 셔터를 누르기 이전에 현실 상황을 숙고한 뒤 사진을 촬영하며, 결과물은 절대로 재편집하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데사우 수용소에서 군중 속의 여자와 고발자의 대립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어떤 기교 없이 작가의 예리한 시선으로 강렬한 이미지와 역사성을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의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와 촬영한 영화 <귀환 Le Retour>을 통해 전쟁포로들의 귀환을 다루기도 했다. 브레송의 첫 번째 책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프랑스어 본제목은 ‘재빠른 이미지들(Images a la sauvette)’이지만 국내에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과 개념으로 더 알려져있다. 1940년 전쟁포로로 붙잡히지 며칠 전 라이카 카메라를 묻었다가 1943년 탈옥에 성공한 뒤 다시 찾았다는 일화는 특히 유명하며, SLR 렌즈를 사용하는 타 브랜드들의 카메라와는 달리 브레송의 스트레이트 사진 철학을 가장 기술적으로 잘 구현하는 RF 렌즈를 갖춘 라이카 카메라는 국내에서도 최근 크게 유행했었다.

 
“Images a la sauvette”, d’Henri Cartier-Bressonㅣ사진출처 telerama
 
뉴스에서 접한 산불로 시작한 작가의 호기심은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확인하는 데에서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우리의 삶 속으로 한 번 더 내려와 수많은 철거와 폐허의 현장으로 연결된다. 화학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을 찾은 작가는 아수라가 되어 버린 잿더미에서 다시 한 번 반전의 이미지를 포착한다. 폐허가 되어 버린 신전의 이미지와 화재 현장을 연결한 작가의 시선은 오로지 사진의 시각언어로만 발언하고 있다. 미필적 고의성 폭력과 방치의 현장이 난무하는 가장 ‘한국이고 동시대적인’ 사회 현장의 다름 아니다.

 
 
시작의 불 – forest #01, pigment print, 140x185, 2019
 
안종현 작가의 르포르타주기법은 사실 이전 작업에 더 진하게 묻어난다. <군>(2007) 시리즈는 작가가 실제 군에 입대해서 동료 군인들과 군의 현장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군대라는 대단히 억압적인 사회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료들의 모습은 극도로 제한적인 조명의 필름 사진으로 남아 있다. (군대에서 허용된 사진 환경은 35mm 단초점 렌즈와 자연광, 니콘 수동 스트로보였다고 한다) 제대 이후 <붉은 방>(2011) 시리즈는 용산참사 이후 잿더미로 변해 버린 용산의 홍등가를 촬영한 것들이다. 강렬하고 정직한 이미지로 동시대인의 양심을 후벼파는 이 사진들은 최근 출간한 작가의 작품집 <보통 Normal>(2018)에서 볼 수 있다.
 
사진제공ㅣ복합문화공간 에무
 
ㅣ안종현 개인전 <시작의 불>
ㅣ2019.03.05 ~ 04.03
ㅣ복합문화공간 에무 www.emuartspace.com
 
글ㅣ조숙현(전시기획자)
 
조숙현은 현대미술 전문 서적∙아트북 출판사인 아트북프레스(Art Book Press)를 설립했다.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고 영화주간지 Film 2.0과 미술월간지 퍼블릭아트에서 취재기자를 했다.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스타일북스, 2015), <서울 인디 예술 공간>(스타일북스, 2016) 등이 있으며, 2018년 강원국제비엔날레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8445728&memberNo=37451778&fbclid=IwAR1rWWUpaa-4deBlGQ2kMUzBNA8BVE7Py15f_pjPLnFED2_t5mu5L7XwGPM


 





CRITIC (p.150)
 
안종현 시작의 불
3.5-4.3 복합문화공간 에무
신승오ㅣ페리지갤러리 디렉터
 
작가 안종현의 개인전 <시작의 불>은 말 그대로 불을 소재로 한 사진작업이다.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비물질적인 불 존재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상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남겨진 흔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는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기록 사진의 형식으로도 나타난다. 작품에서 다뤄진 장소는 크게 두 군데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낡은 공장지대의 전소된 건물이고, 다른 하나는 산불로 인해 불타버린 숲이다. 작품에서 보이는 그대로 불에 타버린 건물은 불의 거친 운동감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숲은 타버릴 대로 타버려 소멸되고 잿더미로 뒤덮였다. 두 장소는 대조적이면서도 이어져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순환 구조를 가진다. 이렇게 동일한 불에 의해 나타난 서로 다른 흔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작가는 어떠한 태도로 이것들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작가가 이전의 작업에서 주제로 삼은 <통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선형적인 것들을 관습적인 시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우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들에서 작가의 직관적 시각이 접속되는 지점들을 찾아내고 단련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태도와 연관해서 보면 <시작의 불>은 어떤 특별한 대상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와 서사에 천착하여 그럴 듯한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가 다루는 장소는 시간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공간이긴 하다. 그렇지만 안종현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적인 관계성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직관적인 시선이 멈춘, 혹은 작가의 눈에 포착된 것으로 시간적, 논리적 인과관계와는 거리가 먼 작업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작가는 화재로 인해 벌어진 여러 가지 상황들을 조사하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서사들을 채집해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진이 담을 수 없는 비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감각을 포착하기 위한 상황적 혹은 장소적 특수성으로만 활용할 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적인 직관에 따른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사진 작업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더욱 심화돼 나타난다. 따라서 그가 화재로 인한 특정한 공간들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의 흔적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대상과 ‘나’의 관계성이 이어지는 지점에 대한 포착이다.
이와 같은 태도로 작가가 화재 현장을 담아내는 <시작의 불> 시리즈는 어떤 것이 발생하고 난 흔적을 통해 지금 이후에 무엇으로든 변해갈 찰나의 표면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불은 결국 작가의 말처럼 소멸과 새로운 시작 사이를 매개하는 표면적 대상으로써 나타난다. 따라서 이번 작업에서 그가 추구하는 것은 특별한 사건으로 인한 화재가 아니라 비물질적인 불의 표면적 부재를 자신만의 시각적 인식과 접속해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 찰나적인 표면으로 사진에 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안종현은 외부에서 얻어지는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나’라는 주체의 시각이 포착하는 이미지의 표면에 머무르며, 그 안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앞으로 그가 사진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포착해 나갈지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안종현 <시작의 불 factory-#01>(사진 맨 오른쪽) 피그먼트 프린트 140x185cm 2019                                           



 

 






NEWS
 
시작의 불: 안종현 전
 
복합문화공간에무는 4월 3일까지 ‘시작의 불: 안종현’ 전을 개최한다. 작가는 불이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어떻게 허물었는지 연구해 왔다. 이번 전시는 불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결합하고 태워버린 잔재를 조명해 경계의 모호함을 주목한다. 그 경계는 잿더미가 된 화재 현장이기도 하고, 불을 찾는 행위가 게임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불에 대한 보편적인 단면과 사적인 경험을 이미지화하고 경계선을 구축해, 미학적 과정을 제시함으써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ㅣ문의 (02)730-5514 www.emuartsp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