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사람, 축적
2014.10.07 ~ 10.26

 

오는 10월 9일 재개관하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10월 7일부터 26일까지 이상권 개인전 <공간, 사람, 축적> 을 개최합니다. 몰개성의 도시 공간에 심미성을 부여하는 인간의 존재를 가장 핵심적인“풍경”으로 작업에 담고자하는 이상권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사진적 재현이 아닌 해석적 재구성을 통해“풍경”을 포착하고, 그“풍경”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자합니다.

 



 

 전시서문

 

 우리시대 진경풍속, 평범함의 역설

나는 이십여 년 전 이상권을 기억한다. 그 기억 속에는 이상권의 매력적인 그림과 그의 작업실, 그리고 그 속에서 키웠던 우정과 꿈들, 그리고 당시의 고민과 현실들이 같이 겹쳐진다. 그 당시 이상권은 가난한 우리들의 든든한 맏이였고 촉망받는 젊은 화가였다. 젊은 시절, 푸르렀던 작가 이상권은 참 빛났다. 소박하지만 일상의 힘을 보여줬던 그의 작업은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첫 개인전 이후 모두들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을 무척이나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두 번째 개인전을 계획하고 연기하기를 여러 번, 어느새 우리들의 기다림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2011년 기획했던 전시 <<광화문에서 길을 잃다>> 에 이상권을 초대했다. 그는 <광화문>을 가져왔는데 나는 그 작품을 보았을 때의 감각과 느낌을 잊지 못한다. 뜨문뜨문 그의 작업실에서 보았던 작품들이 이제 나올 때가 되었다는 것도, 더 이상 두 번째 개인전이 연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드디어 17년 만에 두 번째 개인전이 2012년에 열렸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17년이라는 시간을 누군가는 공백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그는 한시도 붓을 놓았던 적 없었고 작업에 대한 고민과 열정을 놓았던 적이 없이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나는 무수히 많은 번민과 갈등, 그리고 노력으로 가득 채워진 이상권의 17년 공백을 기억한다.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노력의 흔적으로 가득 채워서 비운 시간이었다. 

 

이상권의 개인전으로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재개관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2011년 가 <<광화문에서 길을 잃다>> 전시 이후 개인전 제안을 한 후 3년 동안 준비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사람냄새 물씬 나는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람, 공간, 축적>은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상권의 주제와 화법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화법을 주제로 내세워, 사람과 사람, 시간과 공간, 그 사이를 가득 메우는 감정과 심리, 이야기와 소리, 촉각과 감각들로 채운다. 그의 공감각적인 그림들은 익숙하지만 기이한 공간으로 변이되어 불안한 일상을 드러낸다. 소박하고 담담하게 평범함을 그려내는 이상권의 그림은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어느 순간 데자뷰처럼 기이하게 느끼게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화면을 가득 채운 집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숨 막힐 듯 아슬아슬한 긴장과 불안이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가깝게 느껴진다. 

 

이상권의 그림은 무척 구체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이다. 마치 어릴 적 그림일기를 쓰기전에 머리 위에 떠올려지는 한 컷의 하루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바로 그 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잔뜩 담아 압축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특별할 거 없는 어느 하루, 어느 한 순간은 마치 나의 이야기, 나의 기억과 공명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언젠가 내가 경험했던 느낌과 감정, 감각들이 고스란히 기억에 마음에 신체에 떠오르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자신이 가늠할 수 있는 것들로만 주제와 소재를 한정하고, 거기서 느꼈던 것들을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삶과 사람에 대한 질문을 표현하고 육화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세상과 세계에 공감하는 이상권만의 화법에 기인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공감을 넘어 특유한 울림으로 공명하고, 나아가 지친 삶에 따뜻한 위로와 너그러움을 준다.

 

그래서 이상권의 작품들은 우리시대 진경풍속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겸재의 진경산수가 공감각적인 것처럼 이상권이 그리는 다닥다닥 빼곡하게 들어찬 집들과 아파트들, 그리고 사람들이 축적된 화면은 공감각적인 우리시대 진경풍속이다. <숨은 집 찾기> 시리즈, <집으로 가는 길>, <전망 좋은 집>에서 집들은 하나하나 개별적인 집으로 인지되기 보다는 하나의 덩어리, 전체로 들어온다. 너무 평범해서 없는 것처럼 존재하는 그래서 숨어있는 것처럼, 찾아야만 하는 집들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과 무척이나 닮았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함과 튀어서는 안 되는 평범함이 축적된 공간은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서글픔,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역설적으로 켜켜이 쌓여 있다.

이상권 그림의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고 부유한다.그의 그림에서 집은 사람들과 닮았지만 더 이상 안락하고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다. <생활> 시리즈의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집과 닮았고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흔들리면서라도 출근함이 다행이며, <집에는 왔으나>, <집에 온 사람들>의 사람들은 집에는 왔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때론 집 주변을 배회하고, 축 쳐진 뒷모습으로 집으로 들어간다. <모던보이>의 소년처럼 우리들은 꽉 채운 건물과 공간을 가득 채운 소음들이 너무 가득 차서 사라지고 소년은 자신만의 시공으로 부유하듯 둥둥떠 있다. 모던보이의 복장은 직장인과 소년으로 분열되어 있듯, 사람들은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소년이 자신안에 공존한다. 

 

우리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익숙하지만 낯선 섬뜩함을 느낀다. 이렇듯 이상권의 작업은 사람, 공간, 축적을 통해 주체의 분열, 불안, 너무 가득 채워 내파된 공간을 우리시대 평범함의 역설로 보여준다. 또한 그의 이미지 서사로 구현되는 구체적 보편성은 우리의 기억과 여러 감각을 끌어내어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한다. 마치 김광석의 노래가 나의 기억과 겹쳐 위로하듯 이상권의 그림 역시 현실의 고단함과 평범함의 위대함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