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진시장 에세이/리뷰 - 관장


탕진 시장 스케치-----------------------------
강화 교동도 쌀을 열 푸대 싣고 도착한 시각은 탕진시장이 오픈하는 두 시에서 13분 전. 이미 에무의 입구는 실크로드다. 뮤지션들의 애장품이 쏟아져 나온 상점들마다 형형색색의 물건들로 북적댄다. 주인들은 복장과 헤어스타일부터가 손님들을 축제 분위기로 내몬다.
레몬치킨 컵밥과 돼지고기 컵밥 중 돼지를 택해서 숲내음 자욱한 에무 뒤뜰로 내려간다. 파라솔 3개가 각각 상점이다. 같이 온 딸은 한군데에서 <샹송과 칸초네 악보집>을 산다. 그루터기에 앉아 먹는 컵밥이 마치 여행지에 온 듯한 운치를 선물한다.
다시 상점들로 번화한 1층으로 되돌아간다. 크라잉넛 상점을 기웃거리다 좀 더 나은 물건을 찾아 고개를 돌리는데, 동양표준음향사의 음반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내가 좋아하는 밥말리다. 레게 머리를 한 주인의 환대를 받으며, 그의 엘피판 한 장을 구입한다. 아. 기분 좋다. 귀한 명반을 손에 들고 층계를 오른다.
2층 영화관 입구. ‘비밀영상 상영시간표’가 붙어있다. 이건 뭔가? 사전에 여기선 절대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들었기 때문에 더욱 궁금하다. 하지만 아직 이른 시간. 
한편, 영화관 안쪽 깊숙한 곳에 작은 방이 보인다. 문에 ‘고해성사의 방’이라고 쓰인, 별로 성스러워 보이지 않은 종이가 붙어 있다. 기웃거려 보니까,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이주현이다. 영업개시 준비 중. 벽에 커다란 양탄자가 걸려있는데, 첫눈에 티벳 카페에 온 느낌이다. 어색해 하는 몸동작에도 불구하고 이주현의 포스 하나는 쩐다. 나는 그한테서 어떤 냄새를 맡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저 사람을 보라.’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정욕시장과 탕진떡볶이가 개장을 안 한 상태라 인적이 드문 옥상에 한 팀만이 포커놀이를 한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더위가 기세를 떨치지 못한다. 그 덕에 화려한 태양빛이 에너지 넘치는 레게 음악처럼 즐겁다. 
이때, 아들 친구가 이모, 삼촌이라 부르는 분들이 올라온다. 내가 아는 얼굴은 셋. 여남은 명과 인사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는데 행복하다. 화려한 태양빛이 신록 위에 부서진다. 멋진 챙모자를 쓴 이모 한 분이 인왕산을 가리키며 스카이라운지의 뷰에 감탄한다. 데려온 어린애들이 축구공을 가지고 논다. 데크가 텅텅거려 신경이 쓰이지만 자유롭고 아름답다.
나는 이분들 앞에서 거문고를 탄다. ‘진양’ 첫대목. 박수갈채. 광주서 올라온, 적벽가 소리꾼 박형진이 내 간청에 못이겨 목청껏 소리한다. 경희궁 숲이 병풍인 양 소리를 둘러싼다. 어허, 얼쑤, 추임새를 넣으며 술이 익어간다.
마침내 정욕시장과 떡볶기가 문을 연다.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 신들이 먼저 허기를 채우려 할까 봐 걱정될 지경이다. 뮤지션이 구어주는 고기라, 더 짱. 피해의식밴드의 크로커다일은 손님들을 피해의식의 5단계로 구분해 맞춤구이를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인정 많고 섬세하다는 얘기. 연기 속에서 비닐 봉지를 얼굴에 뒤집어쓴, 갤럭시 익스프레스 드러머 김희권의 굽는 모습은 차라리 전투무예에 가깝다 할까.
더 이상 탕진할 곳을 찾지 못할 정도로 흡족한 상태인데, 별안간 나타난 파마머리 여인(이모 삼촌 일행을 찾아온)이 자기는 공연을 봐야 한다며 맥주 한 컵에 고기 한 조각을 급히 삼키고는 어디론가 부리나케 사라진다. 나의 정신도 이때야 든다. 더 아니, 무진장 탕진할 곳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정욕시장에서 빠져 나와 지하1층 공연장으로 간다. 지하2층 겔러리에서 올라온 지인을 층계참에서 만나 얼싸안듯 하고서 비트가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로큰롤 장터에 들어선다. 챙모자 이모가 나를 발견하고 무대 맨앞줄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가리킨다. 사라진 파마머리 여인이 거기서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고 있다. 스트릿건스의 장대비가 거침없이 퍼붓고 있는 가운데 보컬은 로데오카우보이스타일의 머리를 하고서 청중들을 향해 마구마구 총을 쏘아댄다. 나도 여러 방 맞고서 날뛰기 시작한다. 미친 소처럼.
이어지는 공연들. 로다운30의 묵직한 사운드에 발광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딸 그리고 이모와 함께 기둥 뒤에서 나이를 숨기고 뛴다. 20대 아가씨가 흥미롭게 쳐다본다. 나이를 뛰어넘은 이런 혼효가 탕진시장의 매력이다. 
가쁜 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가 끽연을 한다. 담배를 끊었지만 이런 날은 사막에 오아시스다. 맛있다. 감미로움으로 말하자면, 산정 높이 올라간 킬로만자로 표범의 휴식 같다고나 할는지.
여흥에 젖은 몸을 비틀대며 영화관에 들어가니 류준의 쥬크박스가 막 끝나간다. 한참 쉬고 있는데 딸이 들어와 옆좌석에 앉는다. 
“아빠, 뒤뜰에서 하는 연주 정말 좋아.”
“뭐지?”
“이아립의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 
뒤에 덩쿨나무들과 어우러지는 야외 분위기가 좋다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 하는 실루엣 속에 담긴, 딸의 표정이 열정적이다.
다시 옥상에 올라가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추기고 공연장으로 내려간다. 와와..... 환호소리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여성 보컬이 머리채를 흔들며 마지막 곡을 부르는 순간에 들어선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장. 오늘의 피날레. 쿵쾅쿵쾅 모두가 뛴다. 에무 팡타개라지는 기관차 화통처럼 열기로 가득하다. 이주현, 박종현, 김희권 3인조는 우리를 어디로 몰고 가는가? “나의 맘에 불을 밝혀줘 어둠을 볼 수 있게” “밤새 놀아나보자 밤새 춤을 춰보자 밤새 불태워보자
어둠을 밝힐 수 있게 아~~~~” 그래서 우리는 옥상 에프터 파티로 모인다.
DJ Roxy가 흥을 돋우고, 뮤지션들이 고기를 굽고, 탕진시장의 밤은 아름답게 저문다. 흔들흔들, 젊은 남녀가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지만 그러나 아직 탕진이 다 되지 않은 밤이다. 차라리 이제부터 시작될 탕진을 위한 리허설이라 해야 좋지 않을까 싶을 만큼 열기 가득한 신체들이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 인왕산과 북악산과 경희궁에 둘러싸인, 광화문의 에무 공간에서 앞으로도 3개의 탕진 프로젝트를 더 진행할 것인데, 이쯤 되면 세상이 탕진을 열광하는 사태가 벌어질 지도 모르겠다.

2015. 6. 10 Z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