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대하여
2013.09.25 ~ 10.13
 
참여작가 : 구본주, 김영철, 배윤호, 송경동, 손한샘, 이상권, 이수영, 조영하
전시기획 : 박수진
주최 : 복합문화공간 에무
협찬 : 아트테크
후원 : 구본주 기념사업회, 네오룩 닷컴
부대행사 :
제3회 구본주예술상 시상식 및 수상자:연영석 공연 (9. 25. 수. 6pm)
<서울역>(2012, 감독:배윤호) 영화 상영

 
독창적인 사고와 실험정신을 가진 예술가를 지원하고 우리사회의 목소리를 다양한 예술활동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는 2013년 9월 25일 기획전 <우정에 대하여>를 개최합니다.
 
<우정에 대하여>는 故구본주와 함께 푸른 젊음을 나누었던 친구들이 각각 기획자와 작가로 성장 한 후, 각자의 자리에서 20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전시 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갈래로 다져진 그들의 우정은 본 전시에서 도시소시민과의 우정, 예술가의 우정, 비정규노동자 그리고 외국인노동자들과의 우정, 타 생물과의 우정, 미술과 사회의 우정과 같이 다섯갈래의 길로 보여집니다.
 
전시는 먼저 자리를 떠난 친구에게 보내는 친구들의 안부인사이자, 이들 간에 이루어졌던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되어질 우정의 의지입니다. 이와 더불어 관객들에게는 우리 시대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우정을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기획의 글
 
박수진(독립큐레이터/복합문화공간 에무 디렉터)
 
 
20년 전쯤, 절친했던 한 친구와 약속을 했다. 같이 전시를 만들자고. 그러나 같이 약속했던 친구는 너무나 일찍 황망하게 떠났다. 그리고 올 것 같지 않던 십년의 시간이 어느새 왔다. 지키지 못했던 약속은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부채로 자리했다. 이제 그 약속의 전시를 하려고 한다.
 
만약 친구가 살아있다면, 같이 만들고 싶었을 전시는 어떤 것일까? 친구의 생각을 선명하게 떠올리고자 오래된 일기와 앨범을 꺼내봤다. 거기엔 함께한 시간과 말, 미래의 꿈, 그리고 언제나 믿어주던 우정이 있었다. 그때 우리의 우정은 친구들만의 것이 아니라 넝쿨식물이 뻗어나듯이 여러 갈래의 우정으로 자라나고 있었음도 깨달았다. 그 “우정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 구본주도 함께 한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 우리가 말하고 싶은 “우정”은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나누고 있는 우정에 대해, 나아가 미래의 우정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이 전시는 구본주에 대한 오마주이자, 미술이 주변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우정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전시는 우정에 대한 다섯 개의 길을 다루고 있다. 다섯 개의 우정은 도시소시민과의 우정, 예술가들의 우정, 비정규 노동자 및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우정, 다른 생명들과의 우정, 그리고 미술과 사회의 우정이다. 우리가 다루는 다섯 종류의 우정은 서로 다른 지층에서 같은 길을 가는 다양한 방법이다.
 
구본주의 후기 작업을 떠올리면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사는 도시 소시민의 숨 가쁜 일상과 삶의 모습을 일 것이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 <별이 되다>는 샐러리맨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구본주가 도시 소시민들과 나눴던 우정은 여전히 지금도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는 도시 소시민들을 더욱더 불확실하고 불안한 삶 속으로 내몬다. 사람들은 더욱더 개별화되고 연대의 끈마저 느슨해지고 끊어졌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도시 소시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줄 친구가 필요하다. 이상권의 작품은 구본주의 작품들이 도시 소시민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듯이, 그들의 쓸쓸하고 불안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준다. 또한 우정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준다.
 
두 번째 우정은 예술가들의 연대이다. 구본주는 자신의 죽음으로 예술가란 누구이며, 어떤 우정이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줬다. ‘삼성화재의 故 구본주 소송사건’은 ‘예술가를 무직자로 바라보는 법과 자본, 사회적 시각’에 대해, 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예술가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연대하게 했다. 예술가들은 구본주를 알건 알지 못하건, 자발적으로 사회로 나와서 1인 시위를 하며 구본주의 죽음에 우정을 보여주었으며 예술가 자신과 연대했다. 구본주가 가고 10년, 지금도 여전히 예술가들의 삶과 사회적 위치는 불안하다. 손한샘은 예술가들 간의 연대를 통해서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과 예술을 꾸려가야 하는가 묻고 답을 구하고 있다.
 
세 번째 우정은 비정규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와의 연대이다. IMF 그리고 2008년 외환위기 후 모든 노동자는 실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언제든 계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노동자이지만, 신자유주의의 유연한 노동정책은 실업과 비정규직을 양산한다. 그리고 급속하게 진행되는 세계화로 노동시장의 국가경계선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비정규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는 같은 노동을 해도 차별적 대우를 거부할 수 없는 노동약자이며, 그래서 스스로의 숨통을 쥐어짜는 존재가 되었다. 배윤호는 영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와 <서울역>에서 노동약자들과 이야기 나누며, 그 안에서 우정을 찾으며 거기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다.
 
네 번째 우정은 다른 생명과의 연대이다. 우정은 서로에 대한 동등한 사랑과 존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은 그 동등함을 인간들 사이에서만 찾았다. 지독한 인간사랑은 요즘 드러나는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이 되었고 결국 자멸의 길로 내몰고 있다. 아니, 인간이 아니라 무구한 다른 생명들마저 위험하게 했다. 이제 우리는 휴머니즘을 넘어서 모든 생명에 대한 동등한 사랑과 존경을 표해야 한다. 이수영은 자신의 발과 사막의 거친 풀을 실로 연결하고 바람에 운명을 내맡긴다. 인간과 자연의 순환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떤 생명이든 동등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우정은 구본주가 항상 보여주었던 미술과 사회의 연대이자 구본주와 친구들의 우정이다. 구본주의 작품 속의 사람들이 사회와의 연대를 위해 작품 밖으로 나왔다. 그 아슬아슬함을 조영하는 사진으로 포착하고 송경동 시인은 그 사람들에게 우정의 시를 붙여줬다. 김영철은 이들 우정의 연대를 하나의 그림으로 읽고 쓴다. 구본주는 작가데뷔를 한 1993년, 그가 별이 된 2003년,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2013년까지 지난 20년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미술과 사회와의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가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구본주의 작품들은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들과, 기륭전자 해직노동자들과, 연대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하고 있으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각종 시위현장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같이 한다. 그러다 작품이 연행되기도 하고 실종되기도 하면서 지금도 그는 우리와 우정을 나눈다.
 
구본주가 간 지 어느덧 10년, 그러나 그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우정을 나누고 있으며, 우리에게 여러 갈래의 다양한 우정을 나누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나누어야 할, 서로 다름을 배려하는 다양한 우정들이 우리 스스로를 살릴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