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겹의 미학

 

세계일보 2016-05-31 기사

 

 

 

전통 장지기법으로 현대미술 새 길 찾다

에무 ‘겹의 미학’전 8월31일까지

 

 

현대미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통에서 찾으려는 작가들이 있다. 닥나무 껍질의 여러 겹(층)으로 만들어진 장지 위에 작품을 풀어내고 있는 작가들이 그들이다. 스미고 우러나는 색의 다양한 층위에서 각자 나름의 생각들을 펼쳐내고 있다. 장지라는 재료(매체)를 아이디어의 촉매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6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여는 ‘겹의 미학’전에서 이들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7월15일까지 계속되는 전시 1부에는 김민지, 김성호, 김정옥, 김진아, 김현, 김현호, 서한겸, 여주경, 이태욱, 정진화, 진민욱, 최현석 등 젊은 작가 12인이 참여한다. 7월18일 시작되는 2부 전시에는 백진숙, 하용주, 이구용, 임태규, 임만혁, 이동환, 김선두, 이길우, 장현주, 강석문 등 중견작가 10인의 작품이 출품된다.   

장지의 스미고 우러나는 효과는 주객일치(主客一致)의 과정과 닮았다. 주체 중심의 데카르트적 사유를 넘어서고 있는 현대미술의 모양새다. 1부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김진아 작가의 작업태도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육체의 눈을 통한 시각의 지배를 우선시한 서양화에 비해, 마음의 눈을 통해 인간이 곧 세계이며 자연이라는 주객일치로서의 전체를 인식하고자 한다.   

 


김진아의 ‘대나무’

 

김진아의 대나무 숲은 가시적 현실로서의 풍경이 아니다. 마음이라는 존재의 필터를 거친 생명의 숲이다. 작가의 존재 자체가 육화되어 드러나는 ‘자아-자연’이다. 대나무 숲이 바로 작가 자신인 셈이다. 대나무 숲을 통해 존재는 홀로가 아니라 늘 ‘함께(with)’라는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 현대판 사군자라 할 수 있다. 
 

임태규 '러브스토리'
 

사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의 키워드로 아우르기는 쉽지 않다. 현대미술에서 그것은 또 하나의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을 맡은 중앙대 김백균 교수도 “우리에게 재래의 닥종이나 수묵 혹은 전통적 채색 매체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재해석되고 현대미술이라는 개념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그 물음으로부터 출발하여 구성된 전시”라며 “사실 어떤 특정매체에 한정하여 현대미술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 발상임에는 변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의 현대성은 기존 매체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장현주 '숲' 
 

김 교수는 장지기법이 한국화의 정체성 논란에서 비롯됐음을 주시시킨다. 한국화 정체성에 관한 담론은 대부분 일본화라는 거대한 타자에 대한 반발을 통해 이루어졌다. 장지기법에 관한 제기 역시 일본화의 채색기법 논란이 없었으면 일반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화의 왜색화 논쟁은 천경자의 작품에 의해 시작됐다. 왜색화에 대해 반대지점에서 한국색을 찾으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이종상 작가의 장지기법에 관한 주장과 이러한 기법을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려는 시도 외에도 민화전통에서 한국적 뿌리를 찾으려는 박생광도 있었고, 수간채색기법에 유화나 아크릴기법을 적극 도입했던 80년대 황창배 같은 인물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장지가 지닌 매체로서의 매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현대미술을 풍성하게 만드는 도구로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김선두 '질경이'
 

에뮤의 김영종 관장은 “전통적인 장지기법이 우리 민화에 연원을 두고 있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화는 샤머니즘의 우주관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굿’에서 그 관련성을 찾을 수 있고, 굿이 ‘진동’ 속에서 신과 소통하고 ‘대상을 주체화’하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통적인 장지 기법은 ‘겹’의 물성을 살려서 표현하는 까닭에 대상이 색의 겹을 따라 진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굿에서처럼 대상을 주체화한 민화의 역원근법을 계승 발전시킨다면 감금과 폐소공포증의 이미지를 기술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관장은 이런 관점에서 ‘진동’과 ‘역원근법’을 ‘겹의 미학’의 특질로 보고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내일신문 2016-06-08 기사

 

'겹의 미학' 전시

2016-06-08 11:13:44 게재

복합문화공간 에무 갤러리에서는 오는 8월 31일까지 '겹의 미학' 전시를 진행한다. 7월 15일까지는 현대 한국화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현대 회화로서 세계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1부 전시가, 7월 18일부터는 한국화의 바탕 재료로 한지의 하나인 장지의 계승과 확산에 집중한 2부 전시가 이어진다.

1부 전시는 장지를 매개로 현대적 표현을 실험적으로 시도하는 젊은 작가 12명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장지 기법을 운용하는 작가부터 장지를 처음 접해보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장지라는 매체를 활용, 다양한 표현을 시도한다. 2부 전시는 '장지: 그 멋과 아름다움을 위하여'를 주제로 중견 작가 10명이 함께 했다. 작가들은 닥종이 생산자이자 화가인 이종국 선생이 제작한 장지로 작품을 제작했다. 5회에 걸친 전시를 통해 한국화의 특성을 확인한 작가들은 장지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심도 깊은 작품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