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LAFUTA

라퓨타, 쓰레기 봉지들의 섬
 

박수진 복합문화공간 에무 디렉터 

 

 

 

비닐, 생물과 무생물 사이

 

사물이 생겼다. 인간이 만든 이 사물은 무성생식을 하듯이 급속도로 수가 늘어갔으며 다양한 종으로 진화해갔다. 오늘도 나는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이 사물들이 한 개, 두 개 늘고 어느새 양 손 가득 이 사물이 들려져 있다. 농촌지역에서 이 사물은 엄청난 규모로 번식하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물결치는 생명력, 그리고 장엄한 최후까지 숭고하기 이를 데 없다. 이제 이 사물은 일상생활, 농업, 산업 활동을 넘어서 예술작품까지 점령한다. 홍상수 영화 <밤과 낮>에서 남자주인공 손에 들려서 그의 찌질한 삶과 성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기도 하고, 광안리 바닷가에는 노란색, 파란색으로 변신하여 바람을 맞으며 마치 식물처럼 사람들을 반긴다.1) 이쯤 되면 이 사물의 명칭이 무엇인지 짐작을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닐봉지라 불리는 플라스틱 백이다. 이처럼 비닐봉지는 탄생 이후 우리 삶과 환경 깊숙이 들어와 있고 엄청난 속도로 만들어지고 폐기되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이병찬의 작품은 바로 이 비닐봉지의 이야기이다.

 

 

 

비닐, 쓰레기의 귀환

 

작가에 따르면 그가 비닐을 작품 소재로 만나게 된 계기는 “송도”와 관계가 깊다고 한다. 매일 그가 바라봤던 송도는 모순적인 공간이다. 한때는 잘 나갔었다고 전해지는, 서해안 최대 규모의 해수욕장이었던 송도는 짙은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늙어버린 창녀 같다. 쇠락한 송도유원지 옆으로 번쩍이면서 새로 들어서는 높은 건물들, 국제신도시 송도의 모습에서 40년대 인공 모래사장이 조성되고 온갖 새롭고 흥미롭던 것이 넘쳐나던 송도해수욕장이 겹쳐진다. 폐기와 건설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생태적 순환일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가 양산된다. 작가는 송도에는 유난히 산업폐기물로 버려진 비닐들, 바닷물에 쓸려오는 비닐봉지들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이 쓰레기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는 행태와 자연생태들과의 유사성이 있다. 한때 유용한 물건이었던 비닐은 쓰레기가 되면 바다, 강, 호수에 가라앉아서 물을 오염시키고 땅속에서 쉽게 썩거나 분해되니 않아 환경문제를 야기시키고, 때로는 태워져서 대기를 오염시키는 위험한 물건으로 되돌아온다. 그는 그 위험한 귀환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젊은 청년들이 일자리로부터 소외되면서 잉여가 되는 현실에서는 그들의 저항과 귀환을 상상하고 있다. 경제발전과 지구화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들은 사물, 자연, 인간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쓰레기로 내몬다. 그는 이 비닐에서 젊은 청년들의 미래, 지구의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의 저항과 귀환의 통쾌함과 두려움을 쓰레기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프랑케슈타인의 최후는?

 

이병찬의 작품제작과정은 마치 검정 비닐봉지가 무성번식을 하듯이 붙여가는 방식을 이룬다. 그는 봉지 하나하나를 라이터 불로 붙여서 이어 붙인다. 그렇게 무한번식해가는 비닐봉지들은 인공의 숨을 들이킨다. 인간이 창조해낸 하나의 사물이 괴물이 되어서 되돌아온 순간이다. 메리 셀리의 소설 프랑케슈타인에서 진짜 괴물은 그 괴물을 만들어낸 과학자 빅터 프랑케슈타인일 것이다. 이병찬은 비닐 생물체에게 라퓨타라는 제목을 붙였다. 미야자치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로 널리 알려진 라퓨타는 하늘을 떠다니는 첨단과학의 결정체이다. 또한 자연의 낙원이며 동시에 대량학살용 무기가 장착된 성이다. 원래 이 라퓨타는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허구의 나라이기도 하다.2) 미야자기 하야오가 라퓨타에서 과학의 위험성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묻는 질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이다. 또한 쓰레기의 저항과 귀환 역시 생각해봐야할 문제일 것이다. 여기에는 근거 없는 희망은 없다. 다만 우리에게는 가치와 윤리, 그리고 행위의 선택만이 놓여있다. 그 선택에 따라서 인간과 지구의 역사는 “최후에 쓰레기만이 있었다.”가 현실이 될 것이다.

 

 

 

1) “낭비”를 주제로 한 2008년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에 출품됐던 홍현숙 작가의 작품.

2) 조너선 스위프트는 하늘을 날아다닌 섬의 왕 라퓨타의 이름에 여러 가지 언어놀이를 한다. 책에서는 라퓨타 사람들은 ‘랖’은 ‘높다’. ‘운트’는 ‘군주’를 뜻하는 것으로 두 단어가 합쳐 라퓨타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la puta(라 푸타)”는 스페인어로 “창녀”를 뜻한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린달리노의 라퓨타에 저항을 그려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