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임상실험실 갤러리에무 기획초대전 《성의 정치학》 김형기, 박건재, 전인경 2020.10.06 - 2020.11.01





l 전시서문


길을 내는 용기, 횃불을 들고 길을 찾는 프로메테우스의 용기― 그것이 미술사의 시작이다. 
그 시작은 어두운 공간의 동굴, 혹은 밝은 공간의 암벽에 ‘제의’를 위해 ‘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 제의에 ‘원본이 된 이미지’가 존재한다. 
플라톤은 이러한 전통에 반기를 들기 위해 <국가>를 제안했다. 
이처럼 성과 정치는 불가분이다. 

플라톤 이후, ‘성’은 이성에 반하는, 반이성의 표상이 됐다.
즉, ‘성의 해방’은 반이성의 낙인에 대한 정치적 행동이다. 낙인은 그림자/이미지다.
신자유주의사회에서 그림자/이미지를 극복하는 것은 그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이미지 범람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성’을 표현하는 건 ‘정치’일 수밖에 없다. 
이미지는 상투어의 ‘기호’이고, ‘화폐’이며, 자유의 반대말인 ‘관습’이다.
이미지 세상에서 ‘성’을 화폐로 계산하는 것을 거부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는 작가는 이미지에 편승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류의 동굴시대부터 인공지능, 그리고 자연사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의 ‘성’을 다룬다. 동시에 성의 본성을 우주와의 교감 속에서 찾는다.
이것이 ‘성’을 이미지로부터 구제한 ‘성의 정치학’이다.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성좌(Konstellation)를 통해 재발견된 ‘오래된 미래’다. 

김형기, 박건재, 전인경은 자신을 장악하고 있는 이미지들을 넘어선 ‘성’의 아우라를 발견해낸다.
발견의 징표는 몸에서 ‘오르가즘’이 살아나는 것이다. 감상의 궁극은 우리 신체의 변화다.

전시구성의 하나로, 《성의 정치학》 심포지엄이 10월 29일에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김영종(기획, 갤러리에무 관장)

 





l 작가노트 


모든 작품은 의도적인 드로잉이 아닌 발견이다. 작가의 몸이 움직이고 그 에너지를 따라 물이 흐르듯 춤을 추며 물감과 몸이 하나 되어 흐르면 하얀 캔버스 안에 선들도 중력으로 인해 스스로 생명력을 갖는다. 작품의 존재 방식이 비의도적이며 자신은 몸짓, 행위를 통해 현재 관념의식 너머의 세상을 찾고 싶은 욕망! 내적 호기심? - 오토마티즘 방법을 이용해 예기치 않은 만남으로 형상을 발견해 나간다. 마치 횃불을 들고 빛이 없는 동굴로 찾아 들어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또다른 우주를 발견하고 감탄하며 자신의 내면에 표출하고 싶은 욕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색과 몸짓(덜 길들여진 본능적)의 에너지로 화면에 뿌리고 표출하면서 보여지는 미지의 무한한 형상들을 통해 과연 작가의 무의식적 욕망이 무엇인지 화면에 묻고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자연합일과 생명 순환의 예술적 발견과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창작 과정에 무수히 숨어있는, 놀이하는 인간의 쾌감! 유희! 표출충동! 아마도 생명체 속에 숨어있는 에너지이다. 몸짓 에너지의 결과를 감상하면서 LIFE! 지금 살아있고 생육하고 번성하길 바라는 욕망! 어느 계시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모든 작업이 작가가 중력(Gravity)이라는 우주적 원리와 화합하려는 일맥상통(一脈相通)된 관계를 가지며 미지의 동굴에서 오토마티즘적인 LIVE(날 것) 작업을 펼치며 생명의 에너지를 표출하여 우주와 자연의 오묘한 조화 속에 나의 욕망을 발견해가고 싶다.

 

김형기



한국의 전통적 유교관에 입각한 남존여비의 사상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으로 고착되어, 여성의 존재가 남성에 의존하며 남성의 삶에 도움을 주거나 가정을 돌보는 대상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전부로 생각되어져 왔다. 이러한 유교관이 마치 한국의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인 것처럼 각인되어져 왔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여성의 능력 확대와 존재감의 증명, 세대간의 차이들이 나타나며 전통적인 여성상에 반하고, 여성의 권익이 페미니즘 운동의 확대로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평등권 문제로 확대되어 여성의 지위 향상과 인식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마초적 성향들은 아직 구태의연한 행동과 인식의 변화없이 아직도 공공연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여성의 인권에 관한 차별적 행태들은 대표적으로 성적 희롱과 성폭력 문제에 가장 예민하게 이슈화되었으며, 최근 다양한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남성들과 여성들의 관계는 대립의 극한 양상까지 이어지고 성을 이용한 정치적 양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품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 부적응자들의 깊은 정신적 공황, 믿어왔던 것에 대한 불신과 원망, 진실과 허구, 왜곡과 과장의 대립 속에 사람들의 의식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한 의심의 눈초리와 불신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들을 형상화하였다.
각종 단체들의 부정과 불의와 묵인과 이권 다툼, 각 정당의 입장과 당리 당락을 위해 이용하는 페미니즘! 진정한 여성인권의 문제는 어디에서 볼 수 있으며 어느 쯤에서 믿음의 화해가 이루어지려나!
정부 발표들, 각 단체의 입장문과 공식 사과문, 수많은 사람들의 말들과 행동들은, 이제 한국의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은 OECD회원국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위치에 서있으나, 아직도 인권과 문화적 의식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여성 인권에 있어서는 아직도 유교사상의 팽배로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지의 수준이 많이 보이고 있으며 개선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 성을 당리당락의 정치적 도구의 일환으로 삼아 이용하는 무리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닌, 상식이 통하고 진실이 이야기되며 사랑이 근본이 되는 비폭력 평등한 국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평등주의자들(페미니스트)은 1900년대부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나 사회지배구조를 담당하는 기득권세력인 남성들 세상에선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변혁시키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활동들을 하고있다. 때로는 온화하게, 때로는 메갈이라 불리우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권익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작품들은 단순한 기하학적 도상의 형태에 스피커를 달아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의 상징을 단순화시킨 형태의 조각은 사회구조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송곳 형태와 서늘한 모서리의 칼날 모습으로 형성되어 사회적 대립을 표현하고 있다.

 

박건재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나 각자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유한한 존재이다. 우주와 비교하면 정말 티끌 속의 티끌보다 더 작은 공간에서 찰나의 찰나 같은 시간 동안 잠시 세상에서 머물다 사라진다. 이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살아있는 동안 내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끊임없이 죽고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 지금 나를 이루는 세포들은 어제의 세포들과 같지 않고 내일의 세포들과도 같지 않다. 수많은 세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서 삶과 죽음을 이어가고 있다.
세포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수많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의 거대한 항성들은 원자들의 핵융합으로 인해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고 이 때 만들어진 원자들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결국, 우리는 초신성의 잔해로부터 온 우주에서 온 별의 먼지이다. 내가 죽어도 원자는 죽지 않는다. 내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흩뿌려지고 다른 생명체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순간이지만 나의 몸을 이루는 원자는 영원히 존재한다. <우주의 춤> 연작은 별의 탄생과 죽음이 일어나는 우주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표현한 그림이다.
탄트리즘의 우주론에서는 우주 남자 시바와 우주 여자 샥티가 존재하고, 두 우주 원리가 결합하여 별의 씨를 품고 우주 여자 샥티가 아기별들을 탄생시킨다. 탄트리즘의 지혜는 별의 탄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고스란히 생명의 논리로 이어진다. 우주에서 별이 생을 다할 때의 모습과 생명체의 세포 분열 모습은 매우 유사하다. 별의 탄생과 죽음은 세포의 탄생과 죽음과 동일한 원리에 의해 이뤄진다. <우주의 자궁> 연작은 이렇듯 별의 탄생과 세포의 분열을 통하여 우주의 여성성을 표현한 것이다. 
나의 초기작 ‘만다라’ 연작들에는 항상 화면의 중심에서 사방으로 확장하는 만다라 도상을 그렸는데, 이후 ‘포스트만다라’ 연작에서는 양쪽으로 나뉘는 대칭 원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자와 후자는 합일과 분열을 의미한다. 우주와 세포에서 벌어지는 하나에서 둘로 나뉘는 현상이 내 그림에서도 단일한 것으로부터 이원적인 것으로의 분열로 나타난다. 
인간도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되어 둘로 나뉘는 경이로운 분열을 통하여 남과 여로 나뉜다. 우리는 수억 마리의 정자들이 경쟁하여 단 하나의 정자가 난자를 포획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난자세포가 수정이 적합한 정자세포를 선택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정자는 화학물질 반응에 이동하는 수동적 존재인 반면, 난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정에 적합한 정자를 골라내는 능동적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미경 밖의 사회에서는 여전히 생물학적 지식을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설명한다. 과학적 지식의 문제에서도 남성중심주의적인 성차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남성의 정자세포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편모를 과장하여 그렸다. 이것은 이 시대의 우월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실제와는 반대로 정자세포가 수많은 난자들을 거느리며 왕처럼 살고 있는 남성중심주의 시각을 비판한 것이다. <간택> 연작에서 나는 남자가 여자를 간택한다는 남성우월주의 시각에 대한 역설로 난자가 정자를 선택하는 역설적인 간택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주와 인간은 놀라울 만큼 서로 닮았다. 나의 그림은 우주의 형상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 생성과 운행의 법칙인 에너지의 흐름을 포착하여 우주의 본질을 형상화하고자 한다. 그것은 남과 여, 양과 음의 분열과 합일이며, 대립과 조화가 공존하는 세계이다. 《성의 정치학》은 인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주와 생명의 문제이다. 우주적 관점으로 생명을 인식하고, 나아가 인간의 문제에서도 우주와 생명의 관점을 가져야 차별을 넘어 평등을 이루는 참된 ‘성의 정치학’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인경   
       

 





l 작품이미지 

 


김형기, Automatism-Expressive Desire Energy and Gravity(부분), 200X1000cm, Acrylic on canvas cloth, 2020


김형기, Automatism-Expressive Desire Energy and Gravity(부분), 200X1000cm, Acrylic on canvas cloth, 2020


전인경, 우주의 자궁 02, 150X150cm, Acrylic on canvas, 2020


전인경, 간택 02, 117X73cm, Acrylic on canvas, 2020


박건재, 에로틱미니멀리즘, 65x150cm, 스테인레스스틸, 스피커, 2020


 

 



l 전시 정보 


기      획    김영종
진      행    김희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E galleryemu_k@emu.or.kr
                황무늬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E galleryemu_hmn@emu.or.kr
주최/주관   복합문화공간에무
후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 
협      력    사계절출판사, AGI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