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천국
2013.03.16 ~ 03.31


*작가 : 구혜영
 

우리사회의 목소리를 다양한 예술활동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는 2013년 첫 전시로 2013년 전시공모에 선정된 퍼포먼스 작가 구혜영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김밥의 천국 Paradise of Kimbab>은 영국 골드스미스에서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로, BLT샌드위치를 주제로 영국에서 진행했던 (2009)의 한국버전이다. 

유머를 기반으로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벼운 방식으로 드러내는 구혜영은 샌드위치 모양의 관을 짜서 본인의 장례식을 연습한다거나(,2009), 정자들의 찰나같은 삶(<두 번 다시 속지 않겠다.>, 2005 / , 2005 / , 2009)을 통하여 순간적인 죽음, 인생의 무상 등을 이야기해왔다.

이번 퍼포먼스 <김밥의 천국>은 일상속 도처에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주변에 널려있고, 구하기 쉬우며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일상에서 간과되는 사물, 김밥을 통하여 해학적으로 표현한다. ‘먹는다’라는 행위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참여자들은 어디에서나 볼수있고, 포장조차 간편한 김밥이라는 흔하디 흔한 음식의 장례식를 통하여 삶을 살아가게 하는 매개체(음식)와 그것의 죽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묘한 상황적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김밥의 장례식을 통하여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구혜영의 이번 전시는 서울 신문로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3월 16일에서 31일까지 열리며, 김밥의 장례식 퍼포먼스는 3월 16일 오후 4시부터 펼쳐진다.

 

 


 

구혜영의 장례식 시리즈

 

 

 

처음 장례식을 치르기 시작한 것은 멸치에서부터다.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반찬으로 나온 멸치 조림 속에서, 입을 위 아래로 한껏 벌리고 죽은 멸치 한 마리를 발견했다. 늘 즐겨먹는 멸치조림인데, 왜 유독 이 멸치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까. 한 어부의 그물에 걸린 수많은 멸치들 중 왜 이 멸치만 이렇게 슬프고 무서운 얼굴로 죽었을까? 죽는 게 너무 억울해 마지막 순간까지 고함을 지른걸까?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먼저 떠나는 게 슬퍼 끝까지 악을 쓰며 울었던 걸까? 머릿 속에서 그 멸치에 대한, 아니 그 멸치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그를 위한 관을 제작했다. 편히 쉬어라 부디…. 

 

멸치 장례식부터 시작된 덧없이 잊혀진 존재들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순간의 쾌락 뒤로 사라져간 정자들로 이어졌다. 수 십억 정자들 가운데 태어난 숙명을 이루는 정자는 단 하나뿐이지 않은가. 실제로 소외되버린 정자들로 작업하고 싶었으나, 정자를 구할 길이 막막해 실리콘으로 정자 이미지를 제작하고 대신해 사진을 찍었다. 여기에는 돌격하는 수 많은 정자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반대 방향으로 헤엄쳐가는 정자가 있다. 본능을 거부한 채, 그는 자신이 들어온 곳으로 다시 나가려는 시도 중이다. 마치 이대로는 사장되지 않으리라는 작은 몸부림처럼.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4월의 어느 날 어딘가를 향해 헤엄 한 번 못 쳐보고 죽을 정자들을 기리기 위해 정자의 관을 만들고 장례식을 치뤄주었다. Rest in Peace…

 

영국 유학 시절, 골드스미스(Goldsmiths)를 다닐 때에도, ‘죽음’과 ‘장례식’에 대한 내 관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가장 첫 번째로 하게 된 프로젝트, 시리즈는 말그대로 장례식 예행 연습이다. 한 존재의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추모하는 의식인 장례식은 산 자를 위한 것일까, 죽은 자를 위한 것일까.

 

한국에서 유독 부고가 많이 들려오던 2008년. 나와 연관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이었지만 시시때때로 눈물이 흐르길 몇 달이었다.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나의 죽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이런 아픔을 겪게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장례식을 연습했다. 나의 장례식을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연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장례식을 준비했다. 장례식이란 고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상주를 위로해주는 조문객들의 역할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관객에게 장례식이라는 경험을 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그들을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조문객이라는 역할을 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2009)는 퍼포먼스 작품이 되었다.

 

어떠한 영문도 모른채 전시장에 들른 관객은 말끔하고 정숙하게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안내자들에게 기대하지 못한 큰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받게 된다. 악수를 하고 와인 한잔과 불켜진 양초를 받고 친절한 안내에 따라 자리로 안내되면서, 관객은 자신이 진지하고 엄숙한 장례식에 초대 되었음을 안다. 식장 앞 단상위에 놓여진 거대한 샌드위치 박스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BLT샌드위치 사이에 끼워져 편안히 잠든 작가의 얼굴을 발견하고 비로스 관객은 작가 자신의 장례식에 초대된 문상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요리사 복장의 사람이 입장해 샌드위치 광고문을 추도사로 낭독하고, 천국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샌드위치(작가 자신)의 영상이 실제 요리사가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와 함께 하모니를 이룬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웃으면 안된다고 알고 있다. 엄숙해야 하고, 슬퍼야 하고, 진지해야 한다. 내 장례식에 마련된 여러 유머 장치들에 어리둥절한 관객들 모두가 이를 보고 맘껏 즐기고 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러 웃으라고 준비한 장치들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저기 단상 위 관에 누워있기 때문이다. 비록 BLT샌드위치 속에 끼워진 채로 우스꽝스럽게 보이겠지만. 이것이 퍼포먼스가 아닌 나의 실제 장례식이라면, 이미 이렇게 연습을 해 본 내 지인들은 나의 죽음을 좀 더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혹자는 왜 샌드위치인가라고 반문할 지 모르겠다. 샌드위치에 그렇게 큰 의미는 숨어있지 않다. 죽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잊어버리고 있을 뿐 일상적 삶 속 도처에 죽음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주변에 널려 있는 어떤 것, 구하기도 쉽고, 사람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빨리 쓰이고 빨리 버려지는 것, 그리고 그것이 관으로 쓰였을 때 아주 이상해지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영국에서 흔해 빠진 샌드위치 박스를 생각해 낸 것이다. 샌드위치와 죽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상반된 것들이다. 먹는 것은 삶을 의미한다. 먹어야 사니까. 하지만 그 먹거리가 죽었다. 먹거리의 장례를 치루어야한다라는 상황에 놓였을 때, 아주 묘한 느낌이 연출된다. 항상 먹던 그 것, 사람들은 그것의 장례식을 참석한다. 관객들은 퍼포먼스에 참석한 후, 샌드위치를 먹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속에 끼여있던 나를 기억하고 한번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인가 내가 진짜로 죽으면 샌드위치를 생각하겠지. 그리고 한번 피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패잔병(The Remnants)>은 첫 번째 정자 장례식의 후속편이다. 한번에 덧없이 끝나버린 정자들의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은 기념일(Memorial Day )행사의 포맷을 빌려, 정자를 열심히 싸우다 아깝게 생을 마감한 젊은 군인에 비유했다. 오래된 레코드에서 나오는 찬송가와 추도 연설, 팡파르를 울리고 1분 간의 묵념, 조문객이 입으로 내는 세 번의 총소리를 끝으로 장례식이 마무리 될 때 쯤, 경비실 수위가 불현듯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빗자루를 들고 와 정교하게 세팅 되어있던 정자 묘지를 쓸어, 그 조그만 정자관들을 모두 쓰레기 봉투에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번에 기획한 퍼포먼스 <김밥의 천국> (2013)은 영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이번에는 김밥이다. 영국의 샌드위치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고, 누구에게나 친숙한 한국 먹거리 대표 음식이다. 포장조차 간편하다. 모든 속재료를 둘둘 말아 만든 김밥은 역시 은박지로 한 번 말아 양끝을 잡아주면 끝이다.

 

관객들은 검정색 정장 차림의 사람들에게 따듯하게 환대 받으며, 입장과 동시에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장례식 순서가 안내된 리플렛을 전달 받는다. 마치 성스러운 성수처럼 한 켠에는 ‘참깨’가 아름다운 그릇에 수북히 쌓여 있다. 관객은 그 깨를 집어 김밥 한 줄 모양의 관에 뿌리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회자의 추도연설로 식은 시작되고, “잘 놀고 간다. 잘 웃고 간다. 잘 울고 간다.”고 천상에서 작별의 노래를 부르는 작가의 모습을 담은 뮤직 비디오가 상영된다.작가의 친모가 준비한 추도 연설은 욕뿐이다. 눈부신 천상에서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부르는 고인의 모습이 프로젝터를 통해 쏘아지고 이와 동시에, 유니폼을 차려 입은 삼바 밴드의 흥겨운 라이브 공연이 하모니를 이룬다. 노래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연기와 함께 고인이 장례식 장에 현시한듯 돌아와 삼바의 흥은 극에 달한다. 노래가 끝나고 고인은 사라지고 삼바 밴드의 북소리만 남는다. 이때 검정색 정장 차림의 사람 네 명이 나와 김밥 관을 은박지로 싸고 어깨 위로 들어올려 유유히 퇴장한다. 관객들은 고인의 관을 따라 자발적으로 추도 행렬에 참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