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박지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인간 진화에 관한 미싱 링크를 찾아서
-인간은 선과 악의 변이와 선택으로 진화한다
이 책은 완전히 새롭고 낯선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비현실적이지 않다. 계급사회로 회귀한 미래를 보는 것처럼 삭막하게 느껴지다가도, 고풍스러운 배경과 캐릭터들의 우아한 분위기 덕에 클래식 한편을 읽는 듯 아련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또한 한 인물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은 치밀하게 짠 범죄추리소설처럼 시종일관 긴장감을 자아낸다.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기 힘든 ‘가족’이라는 굴레, 필연적으로 저지르게 되는 살인의 문제와 법의 효용, 그를 둘러싼 부자간의 숭고한 사랑 등 3대에 이어 걸쳐지는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인간이 가진 악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박지리
문학을 배워 본 적 없는 이 젊은 작가는, 1985년에 태어나 2010년 스물다섯 나이에 『합체』로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한국 문단에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이후 6년 세월 동안 『합체』 『맨홀』 『양춘단 대학 탐방기』 『세븐틴 세븐틴』(공저) 『다윈 영의 악의 기원』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등의 작품을 펴냈고, 신작 『번외』가 발간된다.
박지리는 진지한 문제의식,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작법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동시대 작가와 독자,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 작가였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고 자신을 드러내길 극도로 꺼렸던 작가는 오로지 자기만의 방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 안에서 세상과 소통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잘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천재들이 흔히 그러듯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없이도 세상과 사회를 누구보다 깊이 통찰하고 예측한 작가는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났고, 한국 문학에 영원한 기린아로 남게 되었다.